리터러시란 무엇일까요? 리터러시(literacy)는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정보를 이해하고 맥락을 알고 활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어린이가 리터러시 능력을 키우면 배움, 사고, 창의, 상상, 소통, 공감, 문제 해결력까지 전반적인 능력이 향상합니다. 결국,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기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문해력과는 차이를 두어 이 책에서는 리터러시로 구분했습니다. _17쪽
어른도 어린이도 모든 경험을 반복할 순 없습니다. 어떤 경험은 평생 한 번도 하지 못하니까요. 이와 같은 직접 경험의 한계는 다른 방식으로 보완이 가능합니다. 읽고 쓰는 것을 중심으로 한 리터러시 활동을 통해서입니다. 다양한 상황과 감정에 놓인 그림책 읽기를 통해, 또래 친구와 어른과의 대화를 통해,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그리기나 일기 쓰기를 통해서요. 어린이는 이와 같은 다채로운 리터러시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관찰→모방→피드백'의 과정을 내면화함으로써 관점 수용 능력과 공감 능력을 효과적으로 강화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지능이 좋은 어린이는 어떻게 자라게 될까요?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관점에서 보고 감정을 교감하며 자란 사람들은 단순히 '사교적인' 성향을 지니는 것 이상으로 넘어섭니다. 갈등 해결과 중재 능력을 갖춰 성숙하게 소통하는 어른, 정서적 안정과 자기 조절력을 가진 공감하는 어른,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협력하는 어른 등 사회에서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어른이 됩니다. _21-22쪽
제가 생각하는 드로잉은 '생각의 밑그림'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핵심은 회화나 조각을 위한 '밑그림'이 아니라 '생각'입니다.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드로잉이 될 수 있어요. 연필, 크레파스, 색연필, 물감 또는 자연물이나 사물을 붙이는 어떤 매체나 방법도 좋습니다. 아이가 도구를 손에 쥐게 되면 드로잉 생활이 시작됩니다. 글자도 그림도 드로잉이 되죠. 아이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가장 직접적이면서 자연스럽고 자유스럽게 나타납니다. _38-39쪽
감정을 단어로 말하는 일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어려운 일이죠. 전 아이와 먼저 그림책을 보며 자연스럽게 감정 어휘를 익혔습니다. 감정 그림책이란 이름으로 출간된 책도 많은데요. 의도적으로 감정을 공부하기보단 아이가 좋아하는 책, 보고 싶어 하는 책을 활용했어요. 등장인물의 감정이 글로 설명되지 않더라도 그림에 웃는 표정, 슬픈 표정, 당황한 표정, 질투하는 표정, 졸린 표정, 심심한 표정, 화난 표정 등이 등장하면 표정을 함께 따라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상상했죠. 왜 그런 표정을 지은 건지, 무엇이 이런 감정을 일으키는 건지, 이런 감정을 느끼는 상황은 언제인지, 이런 감정이 생긴 이후엔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요. _102-103쪽
어린이는 어른과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경험을 탐색하면서 언어뿐만 아니라 친절, 신뢰, 경계와 같은 인간관계의 뉘앙스도 배웁니다. 어린이가 점차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동안 양육자는 여전히 이러한 상호작용을 안내하고 사회적 신호를 해석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죠. 아이는 개인적 경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배웁니다. 이 시기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독립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때이니까요. 준비 시기가 지나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되면 친구와도 어른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_114쪽
저는 전집보다는 단행본을 우선시합니다. 국내외 창작 단행본은 그림과 내용, 주제나 메시지가 전집보다 더 양질입니다. 그리고 한 권을 읽고 아이가 좋아하게 되면 또 다른 한 권을 아이와 함께 찾아 나서는 책 여행도 즐겁고요. 물론 저도 아이에게 맞춤한 책을 골라주는 데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빗나갔죠. _142쪽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중요한 건 읽어주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입니다. 글만 읽고 내용을 확인하려고 하지 마세요. 글을 읽은 후, 아이와 함께 그림을 보고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세요. "무슨 내용이야?", "이해했어?", "무슨 글자야?"처럼 정보를 묻지 말고, "왜 이런 표정이야?",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 것 같아?"라고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해보세요. 아이가 이야기를 따라오지 못해도 이야기를 확인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_159쪽
전 아이가 영어에 대해 계속 흥미를 이어가는 동시에 한글처럼 머릿속에 '영어의 방'을 만들어주기 위해 영어책을 읽어줍니다. 영어 성적의 월등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영미 문화와 언어를 잘 수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관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니까요. 생각하고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요. 학령기 이후의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양육자의 가치관에 따라 배움의 과정이나 방식이 가장 다른 게 영어를 포함한 리터러시 영역입니다. _171쪽
쓰기는 읽기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읽기 활동으로 호기심이 증폭되어 아이가 쓰기에도 관심을 가질 때, 손가락 소근육이 어느 정도 발달해 연필을 잡을 수 있고 글자 쓰기에 흥미를 느꼈을 때, 천천히 시작해보세요.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지만 서두를 필요도 없습니다. 의사소통 도구인 문자를 읽고 쓰려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인 일인지도 모릅니다. _208쪽
낙서 노트가 그림일기와 가장 다른 점은 바로 감정적 표현이 더 큰 활동이라는 겁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낙서는 스트레스 완화와 심리적 안정 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아이라고 스트레스가 없지 않겠죠. 기관 생활, 교우 관계, 학습과 놀이 등 긴장했던 하루의 끝에서 낙서 노트를 채우는 시간은 치유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의학계에서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졌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사람들의 심리 치료 과정에서 낙서를 활용합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색깔이나 형태를 보고 심리 상태를 추측하기도 합니다. _220쪽
그림일기 쓰기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기이고, 또 하나는 그림으로 쓰기입니다. 먼저 일기란 무엇일까요?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경험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입니다. 글로 쓰는 것만이 일기가 아닙니다. 그림을 그려도 되고 사진을 찍어도 되죠. 목소리로 직접 녹음해도 되고요. 일기를 쓰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제가 '쓰기'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방법이 어떻든 경험하고 상상하고 생각한 것을 논리적으로 질서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_236쪽
어떻게 단어 조각으로 짧은 글쓰기를 할까요? 어떤 단어라도 관계가 없지만, 어린이의 나이에 따라 적절한 수준의 단어 조각이면 좋습니다. 집마다 읽지 않는 어린이책이 있을 겁니다. 글자 크기가 너무 작으면 불편하니 그림책이나 동화책이 좋습니다. 책 속 단어를 싹둑싹둑 잘라보세요. 자르고 마구 섞어 단어를 흩트려주세요. 그리고 아이와 단어를 하나씩 건져내보세요. 단어와 단어를 잇고 흩트리고 다시 잇고를 반복하며 문장을 만들어보세요. 이렇게 단어로 시작한 짧은 글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떠오르면 이어서 써도 좋습니다. 동요든, 동시든, 동화든, 일기든 무엇이든지요. 창작은 어렵지 않고 누구나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_258쪽
유아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단순히 '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육자가 아이와 함께 미디어를 보고, 이야기하고, 실제 경험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합니다. 즉각적인 반응을 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미디어의 자극보다 아이가 직접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고 손을 조작하고 생각하는 경험을 통해 건강한 자극을 추구해야 합니다. (…) 신체적·정서적·지적·감각적 즐거움을 느껴본 아이는 무조건 미디어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미 잘못된 미디어 시청 습관이든 아이라면 습관을 고치기까지 양육자도 아이도 처음엔 힘들 겁니다. 실제 경험과 미디어의 활용 사이에서, 양육자가 다리가 되어주세요. 아이가 자연스럽게 미디어와 건강한 관계를 맺게 되면, 학령기에 접어든 후에도 자신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선별해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_274-275쪽
AI를 활용한 수업을 할 때,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자신이 말하는 단어로 그림을 생성해주는 것과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애니메이션처럼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카이버(Kaiber)나 피카(Pika)를 통해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수업을 한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어요. 한 아이는 화면 위에 작은 강아지가 나타나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걸 보고 자기가 그린 강아지를 '로봇 강아지'라고 말했고, 또 다른 아이는 자신이 그린 나비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며 손뼉을 쳤습니다. 단순히 그림의 움직임이 신기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상상한 세계가 실제로 구현되는 경험이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던 거죠. _294쪽